[리뷰] 낡고 오래된 것의 가치,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은…연극 ‘3월의 눈’ 양승희 기자 2018-02-12


국립극단 대표 레퍼토리, 원로 배우들의 진정성 담아
▲ 연극 ‘3월의 눈(연출 손진책)’ 공연 장면 중 한옥에 사는 노부부 ‘장오(오른쪽, 오영수 분)’와 ‘이순(정영숙 분)’이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있다.(뉴스컬처)     ©사진=국립극단
 
“섭섭헐 것두 없구, 억울헐 것두 없어…. 이젠 집을 비워 줄 때가 된 거야, 내주고 갈 때가 온 거지….”
 
평생을 살던 한옥집을 떠나는 ‘장오’의 심정은 덤덤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모두 끝냈다는 듯이.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은 왜 이리도 섭섭하고 억울한 것일까. 문짝과 마루, 기둥까지 쓰일 만한 목재는 전부 떼어가고 뼈대만 앙상히 남은 집처럼 가슴속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헛헛한 기분이 맴돈다.
 
지난 7일 재공연의 막을 올린 연극 ‘3월의 눈(연출 손진책)’은 손자를 위해 평생을 일구어온 삶의 터전이자 마지막 재산인 한옥을 팔고 집을 떠나는 ‘장오’와 그의 아내 ‘이순’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국 연극계 대표적 극작가 배삼식과 연출가 손진책이 의기투합해 2011년 초연한 이후 여러 차례 앙코르를 거듭하며 국립극단을 대표하는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 연극 ‘3월의 눈(연출 손진책)’ 공연 장면 중 인부들이 한옥의 마루를 뜯어내고 있다.(뉴스컬처)     ©사진=국립극단
 
‘3월의 눈’에는 앞서 故장민호와 故백성희를 비롯해 박혜진, 박근형, 변희봉, 신구 등 연극계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들이 열연을 선보이며 ‘명작’의 계보를 이어왔다. 3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에는 오현경과 손숙, 오영수와 정영숙이 팀을 이루어 부부 연기를 선보이는데, 평생 배우라는 한 우물만 파온 거장들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다.
 
극은 재개발 광풍이 불어든 어느 마을 속 한옥 한 채를 배경으로 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안에 수두룩했던 한옥들은 개발 논리에 밀려 하나둘 허물어져간다. 노부부 장오와 이순이 평생 일구어온 한옥 역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 이곳을 산 새로운 집 주인은 한옥을 허물고 3층짜리 건물을 올릴 계획이다.
 
한눈에 봐도 좋은 목재로, 솜씨 좋은 목수가 정성스레 쌓아올린 집이지만, 이를 지킬 방법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장오는 이순과 함께 겨우내 누렇게 묵은 창호지를 새로 바르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집주인은 인부를 대동해 쓰일 만한 목재를 하나둘 떼어간다. 손자를 위해 집을 팔고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한 장오는 속절없이 집이 망가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 연극 ‘3월의 눈(연출 손진책)’ 공연 장면 중  ‘장오(왼쪽, 오영수 분)’와 ‘이순(정영숙 분)’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다.(뉴스컬처)     ©사진=국립극단

손진책 연출이 “이 작품은 생성과 소멸에 대한 헌사”라고 말한 것처럼,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새롭고 신선한 것만 좋고 옳다고 여겨지는 지금 이 시대에, 낡고 오래된 것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극작가부터 연출가, 배우까지 연륜으로 무장한 이들이 채워가는 ‘3월의 눈’은 바로 낡고 오래된 것의 가치,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내릴 때는 찬란하지만 닿으면 금세 사라지는 3월의 눈 같은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작품은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관객들의 가슴 위로 내려앉는다. 3월이 되면 이 작품이 생각난다고 하는 관람평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내달 1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3월의 눈’
극작: 배삼식
연출: 손진책
무대디자인: 박동우
공연기간: 2018년 2월 7일 ~ 3월 11일
공연장소: 명동예술극장
출연진: 오현경, 손숙, 오영수, 정영숙, 하성광, 김정은, 유병훈, 이종무, 박지아 외
관람료: R석 5만원, S석 3만 5천원, A석 2만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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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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